고해성사의 성서적 근거
atnp567 NAVER 지식iN
질문 : 고해성사의 성서적 근거와 초기 교회에서 실시한 근거를 알켜 주세요.
244**** 질문 0건 질문마감률0% 2004.09.15. 00:12 NAVER 지식iN
답변 :
얼마전 친구 목사들을 (여자 목사도 포함) 만났더니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개신교회가 종교개혁 당시 크게 잘못한 게 꼭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가톨릭에서 나오면서 7성사(聖事)를 아무런 성서적 근거도 없이 없애 버린 것이다" 라고 제법 진지하게 말들 하기에 아~ 이제 교회 일치도 멀지 않았구나 했는데 역시 한국 개신교는 좀 특이 하군요.
해서 여기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새벽기도가 있는 한국 개신교의 그 새벽기도 제도를 만드신 길선주 목사님의 외손이 교회 일치를 위하여 가톨릭으로 회심한 후 그에게 처음으로 신앙의 씨앗을 심어준 두분 할머니 권사님(친가 백권사님, 외가 길권사님)께 쓴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신앙고백서와 체험기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성바오로 서원, 교보문고)중에서 고해성사 부분(일부) 만을 옮겨 왔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펌} 김안토니오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성 바오로 서원, 교보 문고)
* 고해 성사(고백 성사)
할머니! 세상에는 자기가 의인이라고 믿고 생각하는 죄인과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통회하면서 사제 앞에 겸손되이 나아가 고백하는 의인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고해성사 만큼 저로 하여금 가톨릭 교회를 오해하게 하고 비방하게 만든 것도 없으며, 또한 이 고해성사 만큼 주님께서 주신 마음의 평화와 은총이라고 느끼게 한 것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일찍이 우리 주님께서 인류의 붉은 죄를 당신 십자가의 공로로 눈같이 희게 해 주시겠다는 성사를 감히 죄 많은 인간이 무엄하고 또 교만하게도 이것을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고해(고백)성사는 성세(세례)성사로서 받은 하느님의 생명을 죄로 말미암아 잃었을 때 인간의 회심과 하느님의 용서로서 이를 다시 회복시 켜 주시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화해와 치유의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 육신의 질병만 기적으로 고치시고 영혼의 질병을 돌보지 않으셨다면 이는 “의사”일 뿐이지 “구세주”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고 승천하신 뒤 죄인인 우리가 어떠한 방법으로 사죄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 됩니다.
길은 두 가지 이겠지요. 회개하는 죄인이 있을 때마다 예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서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라고 하시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죄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세우신 당신 대리자인 성직자들에게 사죄권을 일임 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인간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사죄 선언을 하시기 위하여 나타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성직자들에게 사죄권을 맡겨 대행하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셨음은 성경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고 또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든 신약시대에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늘 보여 주시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든지 그 인자 하신 계획의 실권을 인간인 대리자에게 맡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실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그 대업을 모세에게 맡기셨습니다. 또 신약에서도 예수님 승천 하신 후 사도 바오로가 신자들을 박해 하려고 다마스커스(다메섹)로 가다가 앞을 못 보게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직접 고쳐 주시거나 직접 그를 회개시키거나 직접 그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고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보내어 눈을 뜨게하고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억지로 외면하며 딴 소리만 합니다.
할머니!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성사를 세우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 16장 19절)” 라고 하신 말씀은 고백성사를 직접 세우시며 하신 선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저 해본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또 달리 해석 하려는 분들을 위하여 사도 바오로는 미리 성경에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이 말씀은 지난번에도 할머니께 알려 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대리자)로서 그 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이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는 말씀입니다.”(Ⅱ고린 5,19-20) 라고요
그 말씀 중에 우리라는 말은 곧 사도 바오로와 같은 사제 즉 오늘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거행할 수 있는 신부, 주교(사제)들이요. 그래서 고해성사를 일명 화해의 성사 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사제라는 말은 또 한번 강조 합니다만 “내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일꾼으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의 직무를 맡아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들을 하느님께 기쁘게 받아 주실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로마서 15장16절) 라는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은총의 샘이시고 성직자(신부, 주교)들은 이 은총의 생명수를 신자들의 영혼에 나누어주는 물길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목자이시고 성직자(신부, 주교)들은 예수님 께서 양떼를 부르실 때 사용하는 나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백소(고해소)에서 사죄경을 외우는 성직자들의 목소리는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정화 하시던 성령의 소리로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Ⅰ고린 2,14) 법입니다. 그러 면서도 자기는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박박 우기며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고 자기 최면에 빠저 있습니다.
고백하지 않고도 사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사죄의 은혜를 베풀기 위한 자비의 보고 열쇠를 사도들에게 맡기실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사죄함의 은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의 사죄권 행사로 인해서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백성사로 죄를 양산한다” 는 옛날 제가 개신교에서 들었던 말은 제가 체험한 바로는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사실 고해성사를 받고도 꼭 같은 죄를 또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을 믿고 죄를 미워하는 신자라면 또 다시 고해성사를 받기 싫어서라도 죄에 저항 합니다.
좋은 이야기도 자주 하면 싫증 나는데 같은 죄를 자꾸 고백 한다면 인간적인 면에서도 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세우신 이 성사에는 주님 치유의 은총이 따르기 때문에 다시 범할 죄의 기회마저 멀리해 주십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서울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의 언쟁이 일어나면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에 있을때 고해성사를 받아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감히 이 성사를 헐뜯기만 했습니다.
고해 성사를 받은 후의 느끼는 기쁨과 평화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평화가 아닙니다(요한 4,27). 이 성사를 받아 보지 못하고서는 누구도 느낄 수 없는 그런 기쁨과 평화입니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짓고나서 바로 고백소로 아무 준비없이 들어가는게 아니라 꼭 필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 째: 지은 모든 죄를 정확히 알아내고 (성찰),
둘 째: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며(통회), 이것 만은 개신교에서도 합니다, 그리곤 제멋대로 모든 죄가 사해젔다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죠. 이것이야 말로 죄를 양산 합니다)
셋 째: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정개),
넷 째: 알아낸 죄를 겸손되이 숨김없이 고백하고(고백),
다섯째: 사제가 일러주는 보속을 실행해야 합니다(보속=기워 갚음).
위의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바엔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마도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말은 위의 요소 중 어느 한가지라도 빠뜨린 극소수를 두고 전체로 오인한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한 죄를 들은 사제는 이를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며 주님의 은총으로 지금까지 2000년간 단 한번도 고해의 비밀이 누설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누설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서 용감하게 순교한 사제들은 역사적으로 많이 있지만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직접 고해성사를 세우시고 또 이를 보호해 주신 은총의 증거입니다. 여기 교부들의 증언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 1세기의「12사도 교리」에는 “여러분의 죄를 고백한 다음 빵을 떼며 감사하십시오..... 죄를 고백하십시오. 더러워진 양심으로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Didache c. iv : xiv) 라고 하였습니다.
- 3세기의 치프리아노는 “형제 여러분 자기 죄를 고백하십시오.. 사제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사죄와 보속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후세에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현세에서 죄를 고백하도록 마련하셨다...... 누구든지 ‘나는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한다’ 든가 ‘하느님 앞에서 고백하겠다’ 는 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하늘의 열쇠를 교회에 맡기신다’ 는 말씀은 헛소리인가? 우리가 무엄하게도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대로 없애 버리겠다는 것인가?(Hom xx. Semo cccxcii)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성사는 예수 친히 세우신 성사로서 초대교회 때부터 전래되어 온 또 하나의 은총의 성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헌데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던 날 저녁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며 하신 말씀 “목욕을 한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요한 13,10) 라고 하신 말씀은 앞으로 고백성사의 사죄권을 받을 베드로와 동료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 뒷부분(모두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은 장차 이 고해성사를 배척하고 심지어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이 고해성사를 부인하는 “죽음의 힘” 에게도 하신 말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해성사와 뉘우침 그리고 보속을 통하여 세례때 지었던 순결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그러나 우리의 뉘우치는 마음과 겸손하게 된 정신을 받아 주소서”(다니 3,39)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단 한번의 범죄로 낙원에서 쫒겨나는 원죄를 범했습니다. 또한 주님의 천사 루시퍼도 단 한번의 범죄로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서 이룩하신 고해 성사로 말미암아 두번, 세번 또, 여러번의 범죄를 용서 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죄 사함 받기 위해 혼자서 소리 지르며 기도하며 땅만 친다고 되는 일은 결코 아니지요.
할머니 이렇게 가톨릭에 회심하고 나서 보니 너무나도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매일 느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성 바오로 서원, 교보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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