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열린사회연구소(이진복교수)와 군포문화원 주관으로 시민문화유적 답사로 조선왕릉 답사를 다녀왔다. 2009년 6월30일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조선왕능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기 까지는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고유한 유적이며 또한 개개의 왕릉의 구조나 기능, 의례면에서 완전하게 보존 되어 있다.
한 왕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의미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는 조선왕릉의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조선왕릉이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장 큰 이유는 왕릉을 조성하면서 작성한 산릉도감의궤가 릉의 석물의 배열이나 정자각의 조성과정은 물론 산릉 조성을 위해 참여한 단순 노역자의 이름까지 작성한 모든 기록 문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을 크게 유네스코에서 인정받았다.
산릉도감위궤는 왕릉이 만들어 졌을 때의 모든 내용을 기록으로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산릉도감위궤는 능이 본래의 모습을 상실 했을때 의궤를 통해서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 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이어 오면서 왕족들의 무덤은 모두 119기가 된다 왕릉이 42기, 원 13기, 묘64기, 모두 119기가 되며, 조선왕족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 한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의 무덤을 말한다. 그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 처럼 묘 라고 한다.
조선왕릉의 조성은 도성에서 100리 이내에 위치 해야 한다. 그것은 왕이 하루 행차 할수 있는 거리를 100리로 잡아 설정된 구역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왕릉을 살펴보면 경기도에 제일 많은 31기가 분포되어 있으며 서울에 8기 강원도 영월에 1기가 있다
경기도에 31기나 되는 많은 능이 조성된 이유는 한양에서 경기도가 지리적으로 100리 안에 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국상이 나면 경기도의 백성들이 가장 많이 능역조성에 동원 되었으며 경기관찰사의 주요 임무는 왕릉을 잘 관리하는 일이었다.
도성에서 100리를 벗어나 강원도 영월에 모셔 있는 장릉은 숙부인 세조에 의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이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승하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배지에 죄인이라는 명목으로 100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유독 단종의 릉만 영월에 모셔저 있다.
나머지 2기는 북한 개성에 모셔있는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추존왕비)인 제릉과 정종임금의 원비 정안왕후 후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되었다. 북한 개성에 모셔있는 조선왕릉 2기도 하루속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어야 마땅하다.
조선왕릉은 금천교를 건너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거쳐 제향공간인 정자각으로 이어진다 . 정자각 뒤는 오직 신만의 공간이다 정자각은 T자 모양으로 독특한데 대한제국 선포 이후 황제릉인 고종(홍릉)의 정자각은 형식이 다르며 고종의 정자각은 ㅡ자 모양의 침전으로 변한것이 특이하다
이렇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의 40기를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군포 시니어 기자단 이 희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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