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의 '못 이룬 사랑 용이 되어' 설화
신라 제28대 임금 진덕여왕 4년 서기650년에 [복흥사]라는 절에 의상대사라는 승려가 있었다
의상대사는 큰 뜻을 품고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사에서 지영법사라는 노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나이 많아 시작한 공부지만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하였는지 의상대사는 스승으로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이때 지장사 아랫마을에는 젊고 예쁜 선묘낭자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남자는
신라에서 온 의상대사를 흠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상대사는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문무왕1년에
신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상대사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낭자는 떠나기 전날
의상대사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였고 이에 의상대사는 불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불가함을 설명하자 물러갔다.
다음날 의상대사가 배를 타려고 하자 그 낭자는 어느새 승복차림에 결혼은 못하더라도
스님 곁에서 나도 불도를 배우겠다고 말하자
의상대사는 다시 점잖게 꾸짖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의상의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것을 안 낭자는 죽을 것을 결심하고
깊은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말았다.
의상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낭자를 생각하며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데 죽은 낭자가 용이되어
의상대사가 탄 배를 따라 신라까지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의상대사가 가는 곳마다 숨어 따라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의상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여인을 생각하고 그 여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세우기로 작정하고 절터를 찾았다
당나라의 그 낭자를 위해 아담한 절을 창전하여 그의 넋을 위로하리라..
의상대사는 이곳저곳 절터를 물색하다가 서산군 부석면 도비산 중턱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산수가 수려하고 앞에 바다가 탁 트였으니 그 낭자가 좋아할 것 같아
의상대사는 좋은 곳에 절을 짓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으며 그 때가 문무왕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그곳 동네 사람들은 도비산에다 절을 짓는 것을 반대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는데도 의상대사는 절 짓는 일을 계속했으며 사람들은 거의 다 지어가는 절을
쇠스랑을 들고 쫓아와서 부수어 버리려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흥분하여 절에 불을 지르려고 할때
갑자기 큰 바위가 공중에서 둥둥 떠오더니 바위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 듣거라. 너희들이 절 짓는 것을 계속 방해하면 이 바윗돌로 너희들 머리를 부수겠다.
지금 당장 물러들 가거라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고 산이 흔들리도록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혼비백산 쫓겨가면서도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의상대사는 생각하기를 저 바위는 당나라 낭자가 용으로 변하여 그 용이 다시 바위로
변하여 나를 도와주는 것이야 의상대사는 새삼 죽은 낭자가 가엾다고 생각되었다.
바위는 훌쩍 날아가 집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절 짓는 공사를 지켜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돌을 물 위에 떠 있다 해서 '부석'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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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부석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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