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는 반나절 답사를 계획하고 음력 보름을 즈음하여
수원화성 으로 이진복 교수님을 모시고 화성 달빛 답사 길을 떠났다.
날씨도 제대로 답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지하철로, 택시로, 도보로, 화성 입구인 신풍루에 도착 해보니
사람이 반갑습니다 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너무 많은 사람에 치여
반가운 사람 손님 맞이가 아닌듯 하다
팔달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돌아본 화성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곽이었다
적을 막기 위해 군사를 배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마치 수원 화성은 아름다운 성곽이었다
6,25전쟁으로 인해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화성이 파괴되어 복원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복원을 한것은
화성의궤가 철저하게 남아있어 화성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는 고증에 도움이 되었다 한다
화성은 동서남북 으로 나뉘어저 팔달문,화서문,장안문,창룡문으로
4가지 색의 빨간색,흰색,검은색,청색, 깃발이 꽂혀 있으며 제일 중심에 있는
화성장대에는 노란색 깃발이 꽂혀 있다
성곽 곳곳에는 누각을 두지 않는 비밀 출입문인 암문이 동서남북의 4군데의
암문과 서남암문등 5군데의 암문이 있다
봉화를 올려 적의 동태와 군사의 기밀 신호를 전하는 통신소 역할을 하는 봉돈이 있다
이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신호 체계이며
총 다섯개의 화두를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데 남쪽 첫번째 화두부터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를 올리고
적이 국경 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를 올리고
적이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3개를 올리고
적이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4개를...
적과 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5개 모두를 화두에 불을 피워 신호를 보낸다
맨 꼭대기 화성장대는 2층 누각에 사령부의 지휘소가 있는 중심지이다
원래 수원은 지금보다 남쪽으로 약8키로 떨어진 화산아래가 그 중심이었다
조선 정조13년(1789)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 위치인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그 아래에 있던 관공서와 민가들을 팔달산 아래로
집단 이전시킴으로서 현재의 수원이 형성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정조 18년(1794)에 수원화성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다
수원화성은 실학자로 불리우는 유형원과 정약용의 성설을 설계의 기본 지침으로 삼아
영의정 체제공이 성역을 주관하고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전력하여 이룩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중에서
구조배치가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병용한것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는점 용재를 구격화하여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에서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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