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신앙생활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

아포리 2012. 2. 18. 22:49

수단의 슈바이쳐 아! 이태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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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슈바이쳐 아! 이태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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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숨진고(故) 이태석(1962~2010)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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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제작한 구수환(KBS 책임프로듀서) 감독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울었다
25년간 방송 생활하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각박한 시대에 따스함을 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가수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 사람’으로 시작했다
생전의 이 신부가 색소폰으로
그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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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그랬다
영화 속 사람들도 영화 밖 사람들도 그 선율을 따라가며
그때 그 사람 이태석 신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모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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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부는 2001년 로마 교황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자청해서아프리카 수단으로 갔다

내전 중인 남수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역이었다

그곳을 자원하는 성직자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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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이태석 신부가 톤즈의 배고픈 아이들 밤낮
사흘간 걸어서 찾아온 환자들 수단인조차 외면하는
한센인을 바라보는 선한 시선과 해맑은 미소가
장면마다 배어난다 이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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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진정한 선교란 과연 무엇인가에
묵상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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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부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10남매를 키웠다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은 그에게 놀이터였다
거기서 벨기에 출신인 다미안(1840~1889)
신부에 대한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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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 속에서 분교아이들과 함께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근처 몰로카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가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49세에 숨을 거둔 인물이다
지난해 교황 베네딕토16세는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이신부는 그영화를 본뒤
사제에 대한 꿈을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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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의대를 졸업한 그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는 어머니께 “사제가 되겠다”뜻을 밝혔다
신부가 된 형도 수녀가 된 누이도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로 반대했다.


 

“남의 아들은 신부로 가면 다 훌륭하고 거룩해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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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 대기실에서 한참 연습중인 브라스 밴드부 단원들 
왜 내 자식은 몇 명이나 데려가시냐고
반문했다
그는 어머니께 효도 못 하고 벌어주지도 못 해서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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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후 영화를 접해 보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사진기를
들이대면 이렇게 쿵후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하느님께 자꾸 끌리는 걸 어떡하느냐?”
고 울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뒤늦게 신학대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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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다
그러나 내전으로 인해 모든 게 황폐해졌다
특히 남수단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말라리아와 콜레라 등으로 약도 치료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 신부는 남수단의 톤즈란 곳으로 갔다
그는 톤즈에서 유일한 의사였다
하루에 300명의 환자가 찾아왔다
100㎞를 걸어서 밤에 문을 두드리는 환자도 있었다
“그곳에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톤즈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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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돈 보스코 초등학교
아이들 공간이 모자랐다
이 신부는 손수 벽돌을 구워서 병원을 지었다
전기도 없었다
지붕에 태양열 집열기를 설치해 냉장고를 돌렸다
더운 날씨에 상하기 쉬운 백신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 신부는 학교도 지었다
  초·중·고 11년 과정을 꾸렸다
손수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케냐에서 교사도 데려왔다
톤즈의 아이들은 거기서 미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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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속의 이 신부는 자신에게 묻고 답했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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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즈 사람들은 그를 “쫄리 신부” 라고 불렀다
‘존 리(John Lee)’라는 세례명을 그렇게 발음했다
많은 사람이 이 신부에게 물었다
왜 굳이 신부가 됐느냐고
 의사로서도 소외된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왜 굳이 아프리카까지 갔느냐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그 모든 물음에 이 신부는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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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선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그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예수의 메시지 앞에서 솟는 눈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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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의 묵상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 하셨지,
 오직 서로 사랑 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 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 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울지마 톤즈’
 
영화를 보면서 훌륭한 분을 잃었다는 생각에  
가슴을 치며 펑펑 울었다
하나님은 그를 그리도 일찍 부르셨을까?
 좀 더 이 땅에 머물게 하면서  더 큰일을
하시도록 놔 두시지    
아직도 이 땅엔 그를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이 
그분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굶고 주린다는 것은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사랑의  굶주림이 아이들을 더욱 아프게 한답니다.
그분의 사랑이 더 필요했는데 
그분의 사랑이 더 필요했는데 
이태석 신부님!
이젠 성모님 예수님 곁에서 편히 쉬십시오
부활에 대한 큰 소망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당신이 하신 일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하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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